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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9. 빌로엘라(Biloela)

[11년 4월 27일, 수] 나이프 핸드(Knife hands)의 푸념

by 이거는 2012. 6. 25.

  빌로엘라, 맑음

  첫 근무. 큰 공장에서 일하다 와서 그런지 비교적 노후된 시설과 여러 불편한 점에 불만이 생겼다.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공장까지의 통근버스가 있다는 점.

  내 포지션은 보닝 로인 위즈나이프(Boning loin WIZ knife). 한국으로 따지자면 엉덩이 위쪽의 등심과 안심을 다루는 부위라고 보면된다.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T본 스테이크가 이 부위에서 나오는데 T본을 자주 자르지는 않았지만 T본 때는 칼질할 것이 없어 갈비뼈를 끊어내는 부서로 지원을 가고는 했다.

  위즈나이프는 아이스크림 퍼낼 때 쓰는 스푼과 비슷한 모양의 칼로 등뼈의 살을 발라내던가 갈비뼈를 고기로부터 빼낼 때 쓴다.(킬플로어에도 비슷한 보직이 있다.)

  칼 쓰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3개월 정도 후에는 잘 때 주먹이 잘 안쥐어졌다. 네 번째 손가락(약지)이 부드럽게 굽히는 과정이 없이 확 접히던가 확 펴졌다. 새벽에 추워서 이불을 덮으려 오른손을 내밀다가 담요를 잡지 못해서 왼손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일을 시작하면 평소대로 잘 움직인다는 점이다.

  제일 앞 라인 칠러(Chiller) 기준, 2시 55시부터 시작이지만 보너를 비롯한 나이프 핸드는 2시 50분부터 공장 안에 대기해야 했다. 일할 때 칼이 안들면 한 시간이 일년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항상 미리 칼을 갈아두어야 했으므로 매일 2시 20분쯤 출근했다.

  1교시가 2시 55분에 시작하면 4시 5분까지 일하고 10분 휴식,

  2교시는 5시 25분까지 일하고, 저녁 30분,

  3교시는 7시 5분까지 일하고, 10분 휴식,

  4교시는 8시 25분까지 일하고, 20분 휴식,

  5교시는 9시 55분까지, 10분 휴식,

  마지막으로 11시 15분까지 일하면 오후반 종료.

  일 마치면 11시 30분, 장비닦고 장화닦고 옷 갈아입으면 11시 45분. 집에 오면 밤 12시.

  잉햄이 쉬는시간으로 갖는 한 교시가 바뀌어 일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체인지오버나 스트레칭 따위도 없었다. 기계 속도에 맞춰 추운환경에서도 땀흘리며 미친듯 칼질을 하면 매 타임이 끝나고 10조각씩 도마 위에 쌓아두다가 점차 숙련되면서 쌓는 양을 줄여가기 시작했다. 10분 쉬는시간이 있긴 하지만 진짜 급한 용무가 아니면 장비를 입고 벗는 과정이 귀찮아 공장 안에서 장비를 입은 채로 쉬었다.

  우리 공장에서는 하루 750마리 정도의 소를 잡는데 잡은 소를 반으로 나누어 오전반이 사람이 많으므로 1500쪽 중 850쪽 정도, 오후반이 650쪽 정도를 해결했다.

  우리 부서는 오전반은 3명 오후반은 2명이 담당했다. 총 6타임 중 오전반은 메인나이프 두타임, 보조나이프 두타임, 위즈나이프 2타임씩 돌아가지만 우리는 메인나이프 3타임 위즈나이프 3타임으로 하루에 자르는 소의 양은 오후반이 더 많다. 여기에 우리는 불(Bulls)까지 잘라야 했다. 뭐 시간당 130쪽을 넘어가면 숙련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속도로 옆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양이기에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 했다. 불스는 살이 물컹물컹해서 날이 잘 선 칼이 아니면 자를 수가 없기 때문에 불스가 많은 날은 앞서 빠른 속도로 레일을 돌리고 마지막 타임에 불스만 몰아넣었다.

  불스도 그렇지만 소의 품종에 따라 칼이 잘 박히는게 있고 오래된 나무박스처럼 살이 건조하고 뼈 모양도 보통과 다른데다가 잘 안 잘리는 품종이 있다.

  호주 쇠고기 최상품이라는 GSA는 첫 타임부터 나온다. 이후로 YG, Y, G, SB, B, CB 등 각종 소 종류들이 나오는데 ST(Steer)는 거세하지 않은 소고기라더라. 뒤로 갈수록 고기의 질이 떨어지는데 덩달아 뼈 모양도 이상하고 칼도 잘 안들어간다.

  줄(Steel, 야스리)이라고 작업 중 매번 칼을 갈 수 없으니 날을 세워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처음에 위즈나이프 용도의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스틸을 팔아서 2주간 개고생했다. 결국 90불짜리 사각형 스틸(파란색 손잡이)를 구매 후 슬슬 감을 익혔다.

  칼을 아무리 잘 갈아둬도 고기를 한번에 5쪽 이상 자르기는 힘들다. 때문에 평균적을 매 2쪽을 자를 때마다 줄로 날을 세우는데 미야모토 무사시는 요시오카 가문의 여러 사람을 상대로 붙어서 이겼다고 한다. 전투중에 줄이나 숫돌을 사용했을리 만무하므로 거의 일격에 한명씩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 그것도 검끼리 부딪히는 경우 날이 상하므로...

  휴, 한 분야의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겠지?

  혼자서 쓸만하다라고 말하기까지는 적어도 두 달, 오후반은 마지막에 불(Bulls)을 잘라야 하므로 칼 한자루는 항상 날을 세운채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사용하곤 한다. 세달이 넘어가면 칼 한자루로도 하루 종일 버틸만 하지만.

  항상 기계 속도에 밀리지 않기 위해 미친듯 칼질을 하지만 혼자서 나오는 모든 양을 커버하기보다는 옆에 있는 동료와 눈치껏 적당한 협조를 한다면 ‘비교적 수월한 업무’가 가능하다. 내 동료는 17살짜리 오지(Aussie)로 정말 착하고 성실했다. 하지만 적당히 눈치껏 하는 것이 없어서 처음에 같이 배우는 과정에서 많이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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