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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9. 빌로엘라(Biloela)

[11년 8월] 고기공장에서의 일과

by 이거는 2012. 7. 13.

  그동안 일하면서 불만이 많이 쌓였다. 한국사람 같았어도 눈치껏 일해서 편했을텐데 같이 일하는 17살짜리 오지(Aussie)가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 레일 속도가 빠를 때는 매번 고기가 쌓이는데 그때마다 간간히 도와주면 쉬울 것을 매번 한가하게 보고만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바로 앞에 주어진 것만 했다. 뭐 얘네들 생각에서는 충분히 맞고 올바른 행동이지만 나는 매번 속이 터졌다.

  물론 업무 이외로는 정말 친절하고 착한 친구였지만 일할 때마다는 매번 친구와 원수의 선을 넘게 만들었다.

  매번 네가 고기를 살리면 네 옆의 내가 죽어난다고 말했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나도 사실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표현하려니 일할 때마다 속이 끓었다.

  때마침 프랭크 형의 Carton to rail 자리가 비길래 슈퍼바이저한테 보직변경을 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평소 괜찮던 손목이 이 일을 하게 된 뒤부터 줄곧 아프다고 했다.(핑계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래도 안된다기에 매일매일 일 시작할 때마다 아프다고 사무실 찾아가서 파나돌(Panadol -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을 얻어먹었다. 매일 일할 때마다 찾아가서 약 얻어먹는게 일과였다. 어떤 때는 1교시 시작 전, 어떤 땐 저녁먹은 후, 어떤 때는 마지막 교시에도 찾아가서 약을 얻어먹었다. 칼 쓰는건 좋은데 위즈나이프 쓸때면 특히 아프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다가 짤린다고 얘기했지만 잔고가 충분한데다가 칼 경력이 있으니 어디 하나 취직 못할까 싶었다.

  3주 정도 얘기했나 도저히 먹히지 않는 것 같아서 결국에 보직변경은 포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남 슬라이서(Slicer) 아저씨를 주더니(... 나한테 준게 맞다) 가르치라고 하더라. 가르치고 날 자르려나? 하지만 우리 부서는 손에 익는데 두 달은 걸리는데? 그래서 슬라이서를 줬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주변의 다른 공장 지원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때였다.

  그 슬라이서 아저씨도 우리 포지션은 여유가 없어서 싫다고 했다. 같은 나이프핸드면 쉽게 일하고 싶단다. 슈퍼바이져한테 몇 일 동안을 얘기하더니 결국에는 본직으로 돌아갔다.

  이맘 때는 이미 간이 커져서 일할 때마다 귀마개에 조그만 MP3를 넣고다녔다. 예전에 농장 때 레오 형이 준 컬투쇼 베스트를 넣어서 업무 중에 들었다. 미친듯 땀흘리며 칼질하다가 갑자기 뻥 하고 터져서 웃기를 여러번. 옆에 있는 동료나 아래서 지켜보던 아줌마들도 날 보면 따라 웃더라. 웃음은 역시 전염성이 있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보고 플로어보이(Floor boy)를 하라고 했다. 원래 플로어보이 하던 사람은 다른 일을 시켰다. 내 보직은 누가 하냐고 하니까 다음 주에 새로 들어올 한국사람에게 시킨다고 했다. 원하는 것이나 시켜주지 왠 생뚱맞게 플로어보이? 암튼 고맙다고 말했다. 으히히.

  플로어보이의 주 업무는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고개 숙이고 무릎꿇고 돌아다닐 일이 많았다. 들어가기 힘든 위치에 기똥차게 떨군 칼이나 야스리를 주워주기 위해 쪼그려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에 하던 일보다 ‘비교적’ 쉬웠고(하지만 일 할때는 땀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일을 일찍 끝내면 더 오래 쉴 수 있다.) 개인 시간이 많았다. 제 역할만 끝내면 쉴 수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휴대폰 게임도 몇 개나 클리어 한 것 같다. 장비 걱정도 없었고 누가 크게 뭐라할 사람도 없었다.

  보직을 플로어보이로 바꾼 뒤 이틀째였나 타운스빌 스위프트(Townsbille JBS Swift)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 메일로 보낸 이력서를 본 모양이다. 타운스빌이면 퀸즐랜드 전체로 따지자면 브리즈번에서 록햄턴까지의 거리가 중간 위치일 정도로 엄청 먼 도시였다. 고맙지만 이미 일을 잡았다고 했다. 모처럼 포지션도 바꿔줬는데 후에 들어올 한국인 후배들을 위해서도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었다.

  결국 내 포지션을 새로 들어온 동갑내기가 하게되었다. 힘들게 배우기 시작한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포지션이 바뀌니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규칙적으로 조금씩 공부도 가능했다. 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저녁 12시, 씻고 전화하고 인터넷 하다보면 새벽 2시에 잠들어 항상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오후반의 특성상 까딱하면 일과 잠자는 것으로 하루가 끝날 수 있기에 가능한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다. 오후반이래야 11시 반이면 업무가 끝나니 사실 한국과 비슷한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 밤을 샐 필요도 없다.

  오전 7시 반이나 8시, 일어나자마자 네슬레 인스턴트 커피를 마신다. 커피 3스푼 설탕 한스푼 물 조금넣고 저은 뒤 우유를 넣어 마신다. 밖의 경치를 보는데 호주사람들이 벌써 많이 돌아다닌다. 그들에게는 8시면 한낮이다.(여기 경도상 해가 일찍뜨고 일찍 진다)

  난 다이어트 한다고 저녁을 따로 안 먹으니 아침은 항상 푸짐하게 먹었다. 3인분 양의 밥을 짓고(아침, 점심, 저녁) 미역국이나 홍합탕을(관절에 좋다는 뉴질랜드 녹색입홍합, 여기 아니면 언제 이렇게 먹어볼까 싶었다) 얼큰하게 끓여먹었다. 된장국에 울월스에서 파는 베이컨이나 해산물 믹스(Seafood Mix)를 넣어먹어도 맛있다. 한국음식의 최대 장점은 아무음식하고나 매치가 가능한 ‘비빔’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다행이 숙소에 우리처럼 머무르는 외국인이 없어서 한국음식을 제대로 해 먹을 수 있었다.(걔들한테는 분명 자극적인 냄새로 느껴질 것이므로 이런 음식은 참아왔다)

  장보고 은행 업무를 마쳐도 10시 반. 느긋하게 미드와 영어단어를 외운 후 30분간 내가 사랑하는 시에스타(Siesta, 낮잠, 스페인 문화로 이곳 호주에는 낮잠자는 문화가 없다)를 즐긴 뒤 점심을 먹는다. 이 때쯤이면 얼추 오후반 사람들은 다 일어나 밥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난 내가 주방을 쓸 때 남들과 겹치는 것을 싫어하므로 이미 주방업무는 끝난 상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셔틀버스 시간이 있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1시 50분까지 정류장으로 나서고 나는 2시 20분쯤 보닝 친구들하고 숙소를 나선다. 보닝룸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친구와 한 주씩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다.

  공장에 도착해 장비챙기고 옷입고 기다리다가 3시부터 일 시작. 2교시가 끝나고 이른 저녁을 먹는데 이때면 벌써 하루의 반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매일 반복되는 생활, 이런 생활을 10년이 넘도록 오래도록 한 사람은 존경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로엘라 티스(Biloela Teys Bros.) 관련글]

01. 빌로엘라 처음 지원한 날 : [10년 7월 1일, 목] 빌로엘라(Biloela Teys Bros.) 고기공장 지원

02. 고기공장에서 일하려면 맞아야 하는 주사 : [11년 4월 3일, 월] 큐피버 접종(Q-Fever)

03. 잡 에이전시 AWX : [11년 4월 11일, 월] AWX 등록

04. 웨이팅 중에도 일을 할 수 있다? : [11년 4월 14일, 목] 박스공장

05. 일 소개는 이렇게 해준다 : [11년 4월 21일, 목] 빌로엘라 티스(Biloela Teys Bros.) 발령

06. 빌로엘라(Biloela)의 숙소와 생활 : [11년 4월 23일, 토] 갠다를 거쳐 빌로엘라로

07. 공장 인덕션은 이렇게 한다 : [11년 4월 25일, 월] 소공장 인덕션

08. 나이프 핸드의 어려운 점 : [11년 4월 27일, 수] 나이프 핸드(Knife hands)의 푸념

09. 공장에서 1년간 일하면 버는 돈 : [11년 6월 27일, 월] 세금환급 신청

10. 휴대폰 통신사 고민해보고 결정하자 : [11년 6월 30일, 목] 옵터스(Optus) VS 텔스트라(Telstra)

11. 공장 일 하기 전 마음가짐 : [11년 7월] 많이 들었던 질문

12. 왜 농장보다 공장인가? : [11년 3월 4일, 금] 공장의 좋은 점

13. 공돌이의 하루 : [11년 8월] 고기공장에서의 일과

14. 소고기공장 주급은 얼마? : [11년 9월] 빌로엘라 티스(Biloela Teys Bros.)의 시급과 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