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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1. 록햄턴(Rockhampton)

[10년 1월 3일, 일] 다리아래 노숙을 하다

by 이거는 2010. 3. 6.

  브리즈번 - 록햄턴, 맑음

  역시 떠나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누나가 해주던 라면도 맛났었고 누나가 있었던 덕에 정말 재밌고 편했는데 아쉬웠다. 워홀로 왔더라면 자기도 이렇게는 못해줬을 거라면서 손사래 치는 누나, 참 내가 인복도 많지.

  11시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 8시에 일어나 준비했다.(너무 일찍 일어나면 누나도 덩달아 깨어날 것이므로) 짐 정리를 하다보니 확실히 짐이 상당했다. 농구공도 그렇고 씨리얼하고 세제같은 것도 그렇고. 다 두고가고 싶었지만 누가 쓰냐며 다 챙겨가래서 담긴했는데 부피와 무게가 상당했다. 이것으로 혼자 어디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겠는데?

  누나가 역까지 굳이 배웅을 와줬다. 고마운 사람.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로마 스트리트까지 왔다.

  탑승 1시간 전부터 비행기처럼 짐 검사후 싣는 시간이 있는 줄 알았더니 웬걸 11시 10분 전에 열차가 서더니 그냥 알아서 싣는 것이었다. 실내는 비행기처럼 깔끔했다. 록햄턴으로 오는 내내 틀어져 있던 에어컨 때문에 엄청 추웠다. 확실히 브리즈번에서 록햄턴까지의 거리는 가까운 게 아니더라. 케언즈까지의 2/5 정도 되려나 하는 지점인데 이노무 땅덩어리는 대체 얼마나 큰거야.

  도착예정시간(6시 30분)을 조금 넘어 저녁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역전에는 공항에서 입국하듯 가족들이 각자 대기후 도착한 사람을 픽업해갔다. 엄청 부러웠다. 나는 여기가 록햄턴의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날은 거의 저물어 역을 나와 조금 헤메니 7시 반. 마치 우리나라 새벽 2시 경의 도로를 보는 듯 했다. 달이 아직 안떠서 방향을 알 수 없었고 가로등도 별로 없어 거리표지판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미리 알아온 백팩을 이제부터 찾아야 하는데 나는 10킬로 상당의 배낭과 20킬로 상당의 이민가방도 갖고있었다.

  우선은 큰 길가부터 찾는 것이 순서라 생각되어 예상되는 방향을 하나 잡고 무작정 걸었다. 확실히 이민가방은 사는게 아니었어. 그냥 캐리어로 살걸. 방향조절도 잘 안되고 바퀴는 시끄럽게 구르고 무게감이 그대로 손목에 전해졌다. 공항처럼 단단하고 코팅된 바닥이라면 확실히 나을지 모르겠는데 여긴 일반 아스팔트였다. 바퀴라도 빠지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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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어찌하여 역의 위치와 거리를 알게되었는데 미리 구글맵으로 이 주변을 프린트하지 못했더라면 더욱 헤멜 뻔 했다. 주변 백팩커부터 알아보는데 거리가 내가 처음 이사올 때의 용인보다 더욱 시골틱했다. 차도 별로 안지나가고 사람은 더욱 없고 가로등만 듬성듬성, 짐의 무게가 슬슬 부담되기 시작했다. 주변 거리를 대략 알고 나니 묵을 숙소 방향을 알겠더라. 하지만 구글맵에서 알아온 것과 간판이 달라서 여긴 아닌 듯 싶어 강 건너 북쪽의 록햄턴 백팩커로 가기로 했다. 기차 안에서 추위에 떨었던 보상만큼 땀이 비오듯 흘렀다. 알던 거리라 할지도 그럴진대 모르는 거리에, 무거운 짐에, 밤의 조명에, 동네 분위기에 기분이 참 별로였다. 이건 뭐 내일 아침까지 아무데서나 잠들어도 사람들이 모를 듯 했다. 갈증이 나서 다리를 건너면서 보이는 KFC에서 음료 2개를 샀다. 숙소도 못찾았는데 먹는건 사치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백팩커를 찾았는데(지도와는 약간 다르게 숨어있더라 게다가 브리즈번같은 백팩커가 아니었어) 젊은 사람들 웃음소리 아니었으면 그대로 지나칠 뻔한, 단층짜리 유닛이 여러개 모여있는 곳이었다. 카운터는 이미 문 닫았고 주위는 완전 어둡고. 이때 시간은 10시.

  그래서 오는 길에 봐 두었던 다리 아래 벤치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땀은 비오듯 흘렀고 날도 더웠으니 설마 얼어죽기야 하랴 싶었다.

  하지만 개그를 빌어 '노숙을 해 봐야 아~~ 노숙자가 괜히 신문지 덮고 자는게 아니구나' 했다. 강 바람에 12시쯤부터는 추워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망할놈의 모기들이 사정없이 공격했다. 모기차단 로션을 발라두면 한 두 시간쯤 얌전하다가 다시 공격해왔다. 내일 해는 정말 뜨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밤이 길었다. 이민가방도 아주 골칫거리인데. 여기까지 온 것은 좋다만 언젠가 돌아갈 때 다시 터미널까지 가야할 길도 고역이라고 생각되었다. 캐리어를 사던가 해야지.

KFC 음료 2개 7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