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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s 일상/한국 홍콩 국제결혼

홍콩의 결혼문화

by 이거는 2019. 5. 31.




홍콩의 결혼문화



한국의 결혼 준비는 프로포즈 후

예식장 시간과 날짜 확정, 그리고 스드메, 신혼여행 등 이런 순서로 계획한다.  


홍콩도 비슷한데 다만 홍콩의 결혼식은 하루종일! 한다는 점.

전통적인 틀을 따랐을 때의 복잡함과 비용이 감당안되 결혼안하는 커플들도 많고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을 고려했을 때 시작부터 큰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점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변화하는 추세라고.

요새 젊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보다 약식으로 과정을 줄이고 비용또한 저렴하게 한다더라.  


와이프가 한국에 온 이후 내 주변사람들의 결혼식에 몇 번 같이 참석했지만

같이 얘기하면서 놀란 바로는 일반적으로 홍콩의 결혼식 비용이 우리나라에 비해 몇 배나 비싸다는 점.  

티를 안내려고는 했지만 비용 얘기를 하면서 점차 굳어가는 내 표정을 의식했는지

우리가 홍콩에서 약식으로 식을 올렸을 경우 와이프의 계산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 없이 0이라고 했다.  

지출없이 0이라면 최소한 결혼식은 공짜로 건지는 것 아니겠냐며.  


홍콩의 결혼문화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검색을 해 보니

분명 한국과 홍콩 국제결혼 커플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대부분의 글의 그런다네요 하는 복사글이 많고 정보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더라.



그래서 공개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살아있고 따끈따끈한 새 버전으로~!

새로이 홍콩 배우자와의 결혼을 앞둔 신랑 또는 신부들에게 홍콩 결혼문화의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결혼에 앞서 우선 길일을 택한다. 

우리나라도 오늘의 운세나, 올해의 띠별 운세를 믿지만 홍콩은 우리보다 좀 더 많이 믿는 듯하다.

(물론 이것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 사주를 보는 것처럼

남녀의 한자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태어난 시간을 따져 길한 날짜 몇개를 리스트로 받는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식당을 알아본다.  

길하다는 날에 원하는 식당이 없을 수도 있으니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맞는 식당을 선택하는 것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왜 예식장이 아닌 식당이냐면 홍콩은 교회나 성당같은 곳에서 예식을 올리고 혼인신고 후,

큰 연회장이 딸린 음식점에서 피로연을 갖는게 보통이란다.  


식당은 장모님과 와이프, 그리고 처형이 몇 가지 리스트로 고민하다가 처가에서 걸어갈 수 있을만큼 가까운 거리인데다 교통도 편하고 내부가 깔끔해서 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게 결혼전에도 해야하는 의식이 있다.  

신랑과 신부가 각각의 집에서 행해야 하는 의식이 있는데

나는 본가가 한국이므로 홍콩에 집이 없으니 호텔방을 빌렸다.

홍콩은 일반 가정집의 경우 크기가 작아 호텔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방들은 일반적인 객실에 비해 비용이 몇 배나 비싸다.  


점집에서 길하다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주는데 남녀 한쌍의 아이들을 섭외해야 한다.

이때 섭외하는 아이는 편모나 편부가 아니면서 유복한 집안의 아이로 해야 한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집을 정리하고 침대시트, 이불, 베게를 붉은색 천의 시트로 교환한다.

각 시트들에는 쌍희 희(囍)자가 수놓아져 있다. (나는 자꾸 홍홍으로 읽혀..)  

이건 신랑의 어머니가 해야하고 다른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일체 금지된다. 신랑이 도움을 주는 것까지는 괜찮단다.  

방의 벽에도 붉은 글씨의 희자가 새겨진 투명한 원형스티커를 붙여 꾸며둔다. 이때 스티커는 짝수로 사용한다.  

침대 머리맡에도 각자의 생일에 맞춰 길하다는 동물을 조각한 나무를 둔다.  

아이들이 도착하면 침대에서 뛰놀게 한다. 방방 뛰고 구르고. 내 생각에는 자녀복 많으라고 하는 의식인 것 같다.  


그 다음은 신부의 집에 아기돼지 통구이를 가져다 주는 것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결혼 함이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아기돼지구이를 피로연을 할 식당에서 구매했다. 애저라고 얘기는 들어봤으나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조리되어 나온게 색깔이나 맡아지는 향은 족발같았지만 겉은 바삭바삭하다.

조금 큰 닭 정도의 크기에 눈에는 체리같은 붉은 과일이 꼽혀있었다.


이때 신부의 집은 신랑이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중

먼저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유복한 친구가 가야한다.

내 경우는 형님과 와이프의 고교동창들이 도와주었다.  

신부의 집에 들러 돼지를 반으로 나누면 반은 신부측에서 갖고 나머지는 신랑 집으로 가지고 온다.  


저녁에도 기도를 해야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때는 신랑과 신부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의식을 준비한다.

이런 의식의 시간도 점쟁이가 길하다는 시간에 맞춰서 해야한다.  

월계수 가지와 잎으로 샤워하고(샤워기에서 나온 물 앞에 월계수 가지를 두어 샤워하는 식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붉은 속옷과 붉은 파자마를 입는다.  


그리고 흰색 떡..이라기보다 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을 3개, 붉은 대추도 3개, 연꽃씨앗은 9개를 준비한다.

각각 조리 후 3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고 기도를 올리는 의식을 해야한다.

내 호텔방도 조리가 가능한 방이었는데 새알을 조리하려고 보니 전기 인덕션이 작동을 안했다.

호텔 프론트에 전화해보니 인덕션을 사용하려면 추가로 돈을 내야한단다.

아니 ^&*()#%! 혼례의식에 쓸 목적으로 조리되는 큰방을 예약한다고 했으면

인덕션은 당연히 사용한다고 간주해야지 콕 찝어서 말해줘야해?  

점집에서 의식하라고 정해준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속으로 욕이 나왔지만 주위를 둘러봤다.

전자렌지도 없는 방인데 어떻게 조리하지?


떡이야 냉동이니 대충 씹고 삼키면 되겠다만 연꽃씨는 어떻게 하지? 그냥 삼켜야 하나?

문뜩 커피포트가 눈에 들어와 떡과 붉은대추, 연꽃씨를 넣고 물을 끓였다.

숙박업체의 커피포트에 상식외의 별별 것들을 다 끓인다던데 부득이 나도 그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바닥에 눌러붙을게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 잘 익었고 모양도 이쁘게 나왔다.  


이후의 의식은 다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녀도 있고 유복한 인생을 살고있는 중년 또는 연상의 남성,

보통은 먼저 장가간 신랑의 친구와 신랑의 어머니가 의식을 도운다. 내 경우는 형님(처형의 남편)이 도와주었다.  

방향을 정해(남쪽이었던 것 같다) 아까 신부집에서 받아온 아기돼지 반쪽으로 상을 차리는데

초를 좌우로 한 개씩 2개를 피우고 향은 3개를 피운다.  

그리고 신랑의 어머니가 빗으로 머리를 세번 빗겨주는데

머리를 빗길 때마다 형님이 뭐라고 크게 읊는데 홍콩말이라 하나도 못알아들었다.

(홍콩의 결혼 의식이 복잡한 것도 그렇고 형님도 이런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었는지

휴대폰에 메모해온 것을 계속 확인하셨다)  

이때 신랑의 어머니는 머리를 빗겨주면서 덕담을 한마디씩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뭔가를 태운다.

뭉쳐진 종이봉투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사 마지막에 지방 태운는 것과 비슷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대신의(大神衣)라고 한다는데 홍콩사람들도 의식이 있으니 구해서 태울 뿐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무슨 내용이 적혀져있는지는 잘 모른단다.

이렇게 되면 의식은 마치게 되지만 잠은 의식 전에 피워둔 초가 다 타야지만 잘 수 있다.  

초가 타는데 오래걸릴 것을 감안해 가느다란 것으로 준비했지만 이것도 타는데 꽤나 오래걸리더라.  


결혼 전 긴장이나 기타 생각으로 잠 못드는 사람도 많다지만

나는 원래부터 잠자리에 상관없이 등만 닿으면 잠드는 타입으로 잘 자고 잘 일어나는 편이다.

마침 이날도 개운하게 꿀잠잤다. 피곤해서 그런가.


식을 올리는 당일에는 붉은 봉투에 복비를 준비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비가 든 봉투를 나눠주는데

이게 적은 금액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수가 많기에 따져보면 상당한 금액이다.

아침에 문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만나는 이웃들과 경비아저씨는 물론 운전기사, 사진가, 미용사, 식당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들 등등

그들을 보조해주는 조수가 있다면 조수들까지도 나눠준다.

신랑 신부의 부모님들도 각자 붉은 봉투를 준비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준다.  


혼인 날은 하루종일 남자쪽 친구들과 여자쪽 친구들이 도와주는 들러리 역을 맡는데

서로 같은 수의 인원으로 구성한다. 이건 서양의 문화와 비슷하다.

내 경우는 여자친구의 홍콩 친구들(한국으로 따지면 중,고교 동창)이 도와줬다.  


신부의 들러리 중에는 한 사람이 메인 노릇을 하는데

메인으로 뽑히게 되면 신랑신부를 따라다니며 수행하고 부모님들께 차를 올릴 때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집밖으로 나와 이동할 때마다 양산을 씌워주고 메인이 아닌 들러리 중 한 명은 양산 위에 흰 쌀을 뿌린다.

한국이었으면 팥을 뿌렸으려나.  

흥미로운게 이러한 메인역할은 인생에서 3번만 할 수 있단다. 그 이상 맡게되면 시집 못간다는 미신이 있다나.  


결혼식날 아침 일찍 신랑과 신랑의 형제(들러리)들이 신부의 집에 방문한다.

이때부터 카메라가 붙어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데

저녁에 있을 피로연에서 오전 동안에 있었던 일을 하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신랑의 들러리들은 더불어 웨딩카를 단장한다.

맨 앞에 암수 하나씩 인형을 매다는게 포인트.  


신부의 집에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면 신부의 친구들은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랑에게 돈을 요구한다. 터무니없이 큰 금액.

그때부터 신랑과 신랑의 친구들, 신부의 친구들 간의 거래가 오간다.

서로 이렇게 적은 금액으론 안된다. 이만큼에 해달라.  


마침내 금액 조율이 끝나면 신부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부의 친구들이 시키는 각종 게임에서 통과해 그들을 만족시켜야만 마침내 신부를 만날 수 있다.  


신부를 만난 후에는 신부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께 순서대로 차를 올리고 덕담을 듣는다.

그리고 신부와 함께 신랑의 집으로 돌아와 마찬가지로 신랑의 부모님과 집안어른들께 차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교회나 성당 등에서 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한다.

이때 하는 혼인신고에는 변호사를 별도로 고용해야한다는데 우리는 이 과정을 생략했다.  


일반적인 절차의 혼인신고는

순서가 선 홍콩 후 한국에서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국에 살고있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거라 홍콩의 혼인신고는 생략하기로 했다.  


부모님께 차를 올리는 의식까지 마친 뒤 다같이 호텔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잠시 쉬나 했더니 호텔방에 올라가 결혼식 하객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간단한 기념품을 포장했다.

피라미드 모양의 이쁘장한 포장이었는데 이쁘긴 하지만 손이 많이 갔다.

포장하는 것을 들러리들이 도와주었는데 조금씩 불평을 했다.

홍콩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 와이프를 비롯한 그 친구들이 그런건지

암튼 그들은 말투가 많이 직설적인 편이다.

포장하는게 고된 노동은 아니지만 완전 Time consuming 이라고.  

불평하는 들러리들에게 작업을 맡기고 우리는 식 준비를 위해 먼저 식장으로 나섰다.  



마침내 대망의 피로연.  

피로연은 식당을 빌려서 하는데 본식의 시작시간은 저녁 7시 또는 8시 정도이나

오후 5시부터 신랑과 신부의 친척들이 오게되는데 땅덩이가 큰 중국의 특성상 시간여유를 길게 잡아둔 것 같다.

이때 신부와 양가 어머님들은 드레스로 갈아입고 화장과 머리손질을 받는다.  

미리 온 손님들을 위해 각 테이블에는 마작이 준비되어 있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볶음밥같은 요깃거리, 스낵, 음료 등이 준비되어 있다.  


들러리들도 마침 일을 마치고 합류했는데 내가 심심해하던 것을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챙겨줬다.  

마작을 간단히 알려주기도 했는데

나는 마작을 홍콩영화 도신에서 주윤발이 높은 수를 추리기 위해 막대로 휘젓던 씬 말고는 처음 접해봤다.  




게임방법은 대체적으로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같은 느낌이었는데

조각들을 조합해 같은 숫자 또는 연달아 배치된 숫자를 빨리 만드는 것이 관건이란다.

남자 들러리들은 본식때 계속 서서 사진찍으려면 힘드니 쉬어두어야 한다고 말렸지만

나의 마작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나를 가르쳤다. 


식당의 음식은 중국식 코스요리이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나온다.


피로연이 시작되기 전에 기다리는 동안 모인 사람들에게 와이프가 서류를 나눠주더라.

깜짝 놀랐던 점이 홍콩은 원래 이렇게 디테일하게 준비한다며

어떤 음식이 나올 때는 어떤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옷은 언제 갈아입고,

들러리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사회자는 뭐라고 멘트하며,

식당직원은 어떻게 하라는 것들이 10~15분 단위로 정리된 시간표를  

담당한 각자에게 전달해주었던 것이다.  


하객들의 좌석배치와, 12명씩 채워지는 테이블상 누가 안오면 어떻게 좌석을 조합하고 등등.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이 전투에 앞서 장군들에게 때가 되면 열어보라고 주머니를 나눠주는 듯 했다.  

여기서 하객들의 좌석배치가 가능한 이유가

홍콩은 한국과 다르게 결혼식에 참여할 인원을 직접 연락해 의향을 묻고

참석하겠다고 하는 하객만 초대하는데

이때 청첩장이 담긴 붉은 봉투를 주면 하객은 그 붉은 봉투에 축의금을 담아서 준다.  


청첩장 양식도 특이했는데 우리는 요새 모바일 청첩장도 있고 각종 사진이 들어가는 반면

여기의 청첩장은 온통 한자로만 되어있었다.

띄어쓰기도 없는 세로읽기로 우에서 좌로 읽히는 진짜 오리지날 한자!  



본 식을 시작하게 되면 각 테이블을 돌며 참석해주신 분들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하객들과 사진을 찍는데 한국의 결혼식은 사진찍는 시간이 별도로 있는 것에 반해

홍콩에서의 결혼식은 수시로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중간중간 옷을 갈아입는데 신부가 옷을 많이 갈아입을수록 얼마나 부유한지를 과시한다고 한다.

나는 3벌, 와이프는 총 5벌을 준비했다.  

참석한 하객들 중에 특별히 친한 사람들이나 사촌들은 각종 금붙이를 추가로 선물하는데

목에는 돼지모형이 있는 금목걸이, 각 손가락에는 금반지, 손목에는 금팔찌를 찬다.

이 금팔찌는 일반적인 팔찌가 아니라 너비가 5센티는 될법한 것들이다.  

내 인생에(내 와이프 인생에서도) 이렇게 많은 금붙이를 몸에 둘러보기는 처음이었다.  

손목이나 손가락에 미처 끼지 못하는 금붙이는 붉은색 실로 엮어 목에 두르는데

하객들은 또 이걸보고 시집을 잘갔느니 못갔느니 판단한단다.  

순금으로 만드는 이 팔찌 하나가 150만원정도 하는데 양손에 착용하니 세트로 약 300만원.

갯수가 많아지면 팔목에서 팔뚝까지, 그래도 남는 것은 또 붉은색 실로 엮어 목에 두른다.

이 순간만큼은 이집트의 파라오보다 더 부유하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결혼식이 양가 부모님의 체면을 세우는 자리라 인식하는 홍콩의 문화에

요새는 이런 것들을 대여해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저녁 11시 반쯤 마침내 마지막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와주신 손님들의 돌아가는 길을 배웅했는데

이때까지 사진찍느라 신랑신부는 쉴 틈이 거의 없다. 얼굴도 웃느라 지쳐버린다.  


한국에서 사촌이나 아는 사람의 결혼을 도와준 경험으로는

손님이 오면 방명록 작성과 함께 축의금을 종합해서 예식비 정산 때 보태던가 했는데

여기서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흉본다고 축의금을 꺼내보는 것조차 장모님께서 싫어하신단다.  

그래서 몇천만원이나 되는 예식비용을 카드로 일시불 결재.  

물론 카드니까 가능하겠다마는 난 카드로 그만한 금액 일시불 하는거 처음 겪어봤다.  


이렇게 준비한 '약식'으로 치루는 결혼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귀국이므로 짐을 싸고, 선물도 싸고 마침내 축의금 정산을 할 수 있었다.  


중국돈은 중국돈대로 홍콩돈은 홍콩돈대로.

피곤한데다가 외국돈이라 그런지 별로 감흥이 없어서 기계적으로 손만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축의금의 금액선이 한국보다 높았는데 보통이 800 내지 1000 홍콩달러(약 15만원)였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 상사가 줬다는 봉투는 테이프로 모두 밀봉되어 있었고 동전이 들었는지 묵직하고 짤랑거렸다.  

뭐지? 축의금에 동전이라니?  

열어보니 9999 홍콩달러로 한국돈으로는 약 150만원. 한자 의미로는 '오래오래'란 뜻이란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고 어떤관계길래..가 아니고 예전 직장 상사가 축의금을 그만큼이나 해?  

쇼킹의 연속..  


귀국 준비까지 다 마치고 씻고나오니 어느덧 새벽 3시반.  

아침일찍 나가봐야 해서 알람을 6시 40분으로 설정하니 헐.. 3시간여밖에 못잔다니..  

암튼, 우리 오늘부터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