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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11년 12월 3일, 토] 애인을 만들고 싶으면 사가다(Sagada)로!

by 이거는 2012. 8. 4.

  바기오 - 사가다, 흐리고 비

  약속대로 새벽 5시에 일어나 비몽사몽으로 대충 씻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 동생과 터미널로 나섰다. 터미널은 우리가 마닐라에서 바기오로 올 때 이용한 빅토리 라이너(Victory liner)가 아닌 센터몰(Centermall) 옆의 당와(Dangwa) 터미널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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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널에 도착해 약간 헤맨 끝에 사가다 행 첫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곳의 버스는 터미널에서 티켓을 사고 탑승하는게 아니라 탑승 후 요금을 내는 형식이라 약간 헷갈려.


  미시령 이상으로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다보니 멀미가 심하게 났다. 중간에 한 시간 반 간격으로 세 번 정도 쉬었는데 심한 멀미로 정신이 없었다. 차라리 확 게워냈으면 좋으련만. 근데 속을 게워내기에는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차서 쉽지않았다.


 

   신기하게도 필리핀 사람들은 매번 쉴 때마다 먹을 것을 사거나 가져온 것을 느긋하게 먹으며 자신들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얘들은 멀미 안하나봐.


 

  산 능선을 따라 운행하기에 까딱 실수하면 떨어져 한참을 굴러야 죽을 수 있는 위치에서 운전을 하는데 커브건 경사길이던 상관없이 앞 차를 앞지른다. 상식적으로 커브에 경사길이면 앞지르기는 금지라는 당연한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전수는 여유로웠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날만한 커브도 도로를 통째로 써가며 운전하는데 내가 멀미만 아니었어도 좀 더 걱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바기오에 처음 오던 날 이상으로 고생하며 정오를 조금 넘겨 사가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데 동굴도 탐험하기 전에 벌써 지쳐버렸어. 집에 가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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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킬로도 안되는 거리를 6시간 넘게 걸려서 가야하는 이유는 온 몸으로 알 수 있다>

  사가다에는 토요일을 맞아 조그만 장이 열리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주말장터 구경은 커녕 한쪽 수풀에서 아침에 마신 커피를 끄집어 내고는 지쳐 주저앉았다.

  잠시 뒤 추슬러 숙소를 찾았다. 어차피 남자 둘이 머물 숙소인데 아무거나 저렴한 곳을 찾기로 했다. 골목을 따라 걷는데 구경온 한국 사람들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나 유럽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가 첫차인데 어제 온 사람들인가보다.


  유명 여행지답게 관리를 잘 하는 것인지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이 낡긴 했지만 거리는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인당 250페소(만원)씩 내고 머문 숙소. 기념품점의 고양이가 귀엽더라.

  숙소를 나와서 우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숙소 아래쪽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있는 곳인데 나는 필리핀 전통 닭요리 중 하나인 아도보 뭐시기를 먹고, 동생은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아도보는 먹을만했지만 스파게티는 너무 달았다.


  동굴투어의 경우 투어가이드가 없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신청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옵션이 여러 개가 있는데 수마깅 동굴(Sumaging cave)과 루미앙 동굴을 커넥션 하는 것도 있다. 듣기로는 온몸이 다 젖고 밧줄타고 좁은 곳 지나는 등의 액티비티가 가능하다는데 나는 카메라를 들고있기에 수마깅 동굴만 가 보기로 했다. 참, 사진찍을만한 장소는 수마깅 동굴뿐이란다. 루밍앙의 경우 액티비티가 강세인데다 공간이 크지 않아서 사진찍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동굴투어를 관련한 모든 여행자 관리는 마을 공동으로 이루어진단다.

  우선 행잉 코핀(Hanging Coffins)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유래도 시기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곳 사가다는 죽은 사람의 관을 절벽에 매다는 풍습이 있다. 관을 여기까지 들고와서 절벽 위에서 내리던 절벽에 사다리로 올리던 최근까지 그 풍습을 지켜온다고 했다.


 

  비가 부슬부슬도 아니고 안개비 수준이어서 옷이 젖고 바닥도 질척이는데 우리 가이드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절벽 가운데에 관을 매달 수 있는거지? 이건 아래서 사다리로 올려야겠는데?


  동굴로 내려가는 길에 램프에 오일을 채웠다.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하더라. 가이드들의 몸이 탄탄한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 간달프. 여기가 어디죠?

  ->  모르도르로 통하는 동굴이 이 아래 있다네.


  영화 배트맨의 포스터 같네? 새로 만들자 데이 나이트 라이즈(The Day Knight Rises)


  입구에는 박쥐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거뭇거뭇 한 것들이 다 박쥐.


  박쥐 똥도 많고 물기도 많고해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나와 동생은 거의 바닥에 누워서 양손과 바지를 더럽혀가며 내려가는데 우리 가이드는 머리 위에 램프를 올리고 차분히 내려간다. 게다가 남은 손 하나도 절대 바닥에 닿는 일이 없더라. 어느정도 내려가서는 슬리퍼를 벗으라고 한다. 그게 움직이기 더 편할 것이라는데 신기하게도 바닥에 물기는 있지만 미끄럽지 않았다.


  포토스팟마다 별명이 다 있었다. 이건 초콜릿 케익.


  이렇게 온몸을 적시며 지나야 하는 곳도 있다.(얕은 부분이 있어 종아리만 적셔도 된다.) 내가 수영하면서 물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마시지 말라고 했다. 검증되지 않은 성분이 있다나?


  나는 내려가면서 여러번 기우뚱했는데 오래도록 가이드를 하다보면 밟고 움직여야 되는 포인트가 있나보다. 움직임이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다. 불빛이 닿는 곳 이외에는 완전한 어둠인데 실수로 떨어지면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무섭더라. 농담으로 여기서도 죽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자주는 아니고 가끔 죽는단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거네?


  모험속에 시작되는 그들의 이야기~♡

  이루어지길 원하는 이성이 있다면 '꼭' 루미앙 - 수마깅 동굴 커넥션을 하기 바란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그런 커플 여럿 만났다.

  목숨걸고...란 표현이 가능한 액티비티들이 있다.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는 곳을 올라간다던가 온 몸이 물에 젖고 좁은 곳을 통과하면서 몰골이 지저분해진다던가. 좋던 싫던 스킨십을 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지역이 있다.


  중간에 램프의 불이 꺼졌는데 완전한 암흑이었다.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장면 중 동굴에 갖힌 톰과 베키의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

  불이 꺼지고 암흑이 찾아오면 그녀, 혹은 그의 입술과 마음을 훔치는거지!


  흙과 박쥐 똥으로 엉망이 된 몰골에 안개비까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씻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내려오는 골목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게되었다. 메뉴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


  그리고 후식으로는 요거트 하우스를 들렀다. 다른 식당들은 휑한데 비해 이곳은 여행 책자에 소개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가득하더라. 특히나 유럽 사람들이 많았다.


  레몬파이가 유명하다는 집도 들렀다. 이곳의 사장님은 한국의 신당동 쪽에서 일해본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난 이곳의 주력상품인 레몬파이보다 계란파이가 맛있더라. 배가 불러서 그냥은 못먹고 포장해와서 다음날 아침에 먹었다.

  저녁에는 별로 할 것이 없다. 거리도 어둡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보니 시끄럽게 떠들 수도 없고 마을이 전체적으로 잠든 것 같았다.

  우리가 한 것은 동굴 커넥션도 아니었지만 굽이굽이 새벽부터 여기까지 오는 여정을 비롯해 오랜만에 목숨의 위협을 느꼈더니 온 몸이 나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