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썬브리즈번(http://www.sunbrisbane.com)의 차량게시판을 보고있는데 꽤나 쓸만한 차가 보였다. 외관은 썬번으로 벗겨져 썩 좋지 않았지만 내가 뭐 외관 따질 때인가.
94년식 미쓰비시 마그나(Mitsubishi magna) 하늘색, 2600cc 오토. 260,000km가 2,100불
뭐 잘난 것 없는 스펙에 외모였지만 차량검색 3일만에 나도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고민들. 눈떠보니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다.
맘에 드는 것은 적당한 배기량, 네비게이션 포함, RWC와 레지가 8월까지로 쓸만했다. 썬번만 없으면 좋을텐데 이 나라의 차들은 왜이리 썬번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에어컨, 라디오 모두 잘 나온다고 했다. 게다가 다음 주중에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하더라. 으흐흐 괜찮은데?
우선은 가격 담합부터 했다. 난 2000불 넘게는 절대 지출할 용의가 없다고 했다. 차량이나 한번 보자고 브리즈번으로 오라고 했더니 자신이 실은 카불쳐에서 일 중이라 주말이 아니면 못간다고 카불쳐까지 오면 교통비는 주겠단다. 차를 산다면 기름값도 주겠단다.
그래서 까짓거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전에 고민중이던 차량은 1500cc 전후의 이를테면 홀덴 바리나(Holden barina), 포드 페스티바(Ford festiva), 닛산 펄사(Nissan pulsar), 도요타 코롤라(Toyata corolla), 미쓰비시 랜서(Mitsubishi lancer)처럼 2000cc 이하의 차량들이었다. 그런데 혼자면 모를까 2명이 일하면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농장에서 동료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조금 큰 것으로 고르기로 했다. 한국 차도 있긴한데 여기서 외국차 안타보면 언제 타보겠어.
카불쳐는 흔히들 브리즈번에서 가장 가깝다고들 하는 농장, 그리고 세컨 폼을 위한 우편번호가 가능한 지역이다. 트레인으로도 연결되어 있으며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호주 오기 전부터 들은 얘기로는 딸기농장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한다. 시티에서 가까워서 세컨폼을 노리는 워홀러, 특히나 유학원이나 학교 등에서 공부를 하다가 세컨폼을 따고자 하는 목적으로 오는 세상물정 모르는 여성 워홀러들이 많다더라.
제한된 일자리 공급에 사람은 넘치다 보니 같은 한인을 등쳐먹는 쉐어 마스터나 한인 컨츄렉터의 악명도 덩달아 유명했다. 나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지.
카불쳐까지 가서 본 차량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좀 컸는데 뭐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레드 클리프(Red cliff)에 살 때 전 주인한테 2700불에 사서 자신이 세컨 오너고 엔진오일과 필터는 물론 마이너 테스트를 꾸준히 해왔다고 했다. 꼼꼼하게 이리저리 둘러...보는 척 했다.
여기서 거래 못하면 추후 계속될 고민과 소모될 시간, 그 시간에 비례해서 지출되는 비용, 걱정하면서 약해질 정신과 판단력 등 빈 손으로 브리즈번으로 돌아간다면 기운이 빠질 듯 했다. 그리 조건이 나쁘지는 않은데.
중고차 체크리스트를 몇 개 적어보겠다.
01. RWC 날짜를 확인한다. 검사 이후 2달 이내에 팔아야 되는 것이므로 날짜를 확인한다. 그리고 오도미터(Odometer, 주행거리계)의 숫자도 비교해본다. 개인 차량은 검사 후 2000km 이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
02. 바퀴를 확인해 본다. 바퀴의 표면이 충분히 깊은지(바퀴가 새것에 가까운지) 확인한다.
03. 차량의 라이트를 다 켜보고 확인한다. 양쪽 다 잘 들어오는지, 특히나 하이빔 켜보고 잘 들어오는지, 실내등도 이상없는지 확인한다. 후방 브레이크 등과 후진시 들어오는 흰색 불, 좌우 깜빡이 등을 확인한다. 사실 모든 라이트는 RWC 검사항목이므로 걔네들도 확인한다.
04. 차량용품은 무엇을 주는지 물어본다. 정비용품이든 차량 용품이든 예를들면 차량정비 도구 세트, 엔진오일, 워셔액, 냉각수, 점퍼케이블 등등. 하지만 '필수는 아니'고 직접 사려고 해도 비싸지는 않다. 내 생각으로는 내가 만일 판매자라면 모두 구비해서 100불이나 200불 더 받고 팔겠다.
하지만 스페어 타이어와 잭(Jack, 차량을 들어올릴 때 쓰는 도구)은 확인해봐야 한다. 이것도 '필수는 아니'지만 내가 구매하려면 비싸고 귀찮다. 그리고 바퀴 펑크난 경험이 있다면 확인 안해볼 수가 없을 것이다.
05. 보닛, 트렁크, 문짝과 창문 이상없이 열리는지 확인.
06. 보닛을 열어 배터리 확인(표시등이 녹색이 정상인데 바로 위에서 확인하지 않으면 잘 안보이는 경우도 있다.), 팬벨트 마모가 없는지 확인, 타이밍 벨트가 교환식인지 영구적인지 확인. 내 차는 다행이 체인이라서 교환할 필요가 없는데 흔한 차종인 도요타 캠리(Camry)는 교환식이라 매 10만 킬로 전후마다 갈아줘야 한다. 팬벨트는 싸지만 타이밍 벨트는 비싸다. 때문에 10만과 20만 전후의 차량은 확인해봐야 한다.
07. 엔진오일 게이지를 빼서 확인해본다. 우선은 뽑아서 닦아내고 원위치 시킨 뒤 다시 빼서 색과 높이를 확인해본다. 높이는 High와 Low 사이에만 있으면 되고 색도 아주 새까많지만 않으면 된다. 원래는 매 5천킬로마다 갈아줘야 하지만 새차가 아니면 매번 만킬로 정도는 괜찮단다.
08. 냉각수도 충분한지 본다. 플라스틱 물탱크처럼 생긴게 딱 두개인데 하나는 워셔액, 하나는 냉각수이다. 둘 다 K-Mart에서 각각 5불 정도면 구매가 가능하니 걱정 안해도 된다.
09. 라디오 잘 나오는지 확인. 장거리 운행중에 음악을 못듣는다는 것 고통이다.
10. 차량의 시동이 부드럽게 걸리는지 걸어본다. 이건 소리로 아는거야.
11. 엔진소리가 자연스러운지 들어본다. 이것도 소리로 아는거야.
12. 에어컨 잘 나오는지 확인. 여름 뿐 아니라 겨울에도 에어컨이 필요하다. 차량의 앞 유리가 온도 차이로 뿌옇게 되기 때문에 약간 틀어야 한다.
13. 계기판을 보고 이상 신호가 없는지 확인한다.
14. 차량 아래로 엎드려서 바닥으로 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에어컨 때문에 나오는 물은 제외.
15. 시범운전 해 본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에서 운전 좀 해본 사람이 아니면 그 감을 잘 모른다. 속도를 올릴 때 변속 충격이 크지 않은지, 언덕을 올라갈 때 힘은 충분히 받는지 등등. 사실 굴러만 가면 되긴 하지만.
16. 스페어 키가 있다면 달라고 한다.
17. 엑셀레이터를 밟아서 속도를 올리면 적정선에서 rpm이 튀지않고 유지된다는데 난 차마 그런 것까지는 확인해볼 실력은 없다. 다만 운전병 출신 동료들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렇단다.
1,800불을 불렀더니 판매자가 깜짝 놀랬다. 네비도 있고 기름도 꽉 찼는데 겨우 그거냐. 100불 깎아서 2000불은 되야지. 하지만 억이 형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배운대로 위 항목에 대한 트집을 잡았다.
결국 1850불로 합의를 봤다. 여자친구 기호인지 햇빛 가리개는 노랑, 시트커버가 핑크였다. 어쩌면 좋아. 나도 핑크 좋아하는데.
등록을 마치기 전까지 800불, 등록을 마친 뒤 1000불을 주기로 하고 바로 퀸즐랜드 트랜스포트(Queensland transport - http://www.tmr.qld.gov.au) 오피스로 갔다.
차량등록에 필요한 두 가지 서류가 필요했다. 서류는 카운터에 모두 비치되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호주 퀸즐랜드에서(주마다 매번 등록이 다르다) 첫 운전이므로 퀸즐랜드 트랜스포트 레퍼런스 넘버(QLD Transport Ref. No. - 퀸즐랜드 운전자 등록번호)가 필요하니 가입하는 문서였고,
두 번째는 위에 보이는 차량 명의이전 신청서.
그리고 주소지 증명이 가능한 호주 정부나 은행으로부터 받은 우편물, 또는 은행 신용카드(비자데빗 - Visa Debit), 국제운전면허증, 여권이 필요했다.
나는 한번에 명의이전이 가능하도록 모든 서류를 이미 준비해 갔기 때문에 일찍 끝났다. 하지만 모른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호주의 공무원은 앞에 주어진 일만 한다는 주의기 때문에 모른다고 물어보면 붙잡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준다. 대신 뒤에는 줄서는 사람들이 잔뜩 불어나겠지만, 얘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스스로가 눈치가 보인다면 시내에 있는 Queensland transport 말고 외곽에 있는 곳으로 갈 것.
판매 가격에 따라 내는 등록비가 달라지는 것을 지난 번 무룹나(Mooroopna)에서 새 차를 사면서 알고 있었기에 판매자에게 500불로 적어달라고 해서 등록비로 47불을 냈다. 재산 양도 신고세 같은 것이겠지?
헤어지고 오는 길에 슬슬 카불쳐 시내를 연습삼아 도로주행을 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브리즈번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진짜 내 차를 스스로 번 돈으로 갖는 기분은 짜릿했다. 이젠 숙소문제에 구애받지 않아. 다리 밑에서 노숙하지 않아도 된다.
브리즈번까지 가는 길에 예전 살던 곳 윈저(Windsor)역 근처에 주차를 하고 여기부터는 트레인을 타고 시티로 들어갔다. 네비가 있어 길은 헤메지 않았다. 네비 모델은 유명한 톰톰(Tomtom)이 아니라 가민(Garmin)이었는데 전 주인이 한국어 패치를 해둬서 한글 음성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멜번서 쓰던 톰톰은 딱딱한 영국여자 음성이었는데.
남은 돈은 1500불 남짓. 다시 호주 처음오던 날처럼 되었다. 이번에 다른 점이라면 농장 경험과 차 한대를 건졌다는 것.
큰맘먹고 저녁은 서브웨이 6인치 햄버거를 먹었다.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랄까.
이곳의 숙소는 1층에 보통은 펍(Pub)을 겸하고 있어 술을 마실 수 있다. 밤마다 시끌벅적한데 특히나 금요일 밤에는 평소보다 더 시끄럽다.
자고있는데 1시쯤 옆 침대 아래쪽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박자 맞춰서 연속되는 소리로 성가셔서 잠을 깼는데 방에 불은 꺼져있었지만 실내 화장실 불과 창문의 불빛으로 남녀가 응응응 하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한 20분여를 하는데 20분이 마치 한 시간 같았다. 신경이 살아서 다시 잠을 이룰 수도 없고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침내 끝났는지 여자와 남자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 말고도 다른 방안의 사람들도 잠을 깨고 그들의 행위를 들은게 확실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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