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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11년 12월 21일, 수] 필리핀 여행 5일차 - 세부(Cebu)

by 이거는 2012. 8. 11.

  세부, 구름 조금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룸서비스로 시킬 수 있다) 산 페드로 요새(Fort San Pedro)로 향했다. 입장료가 있더라.


  필리핀도 우리만큼이나 침략받은 역사가 많다. 이 요새도 1700년대 말 스페인 통치 시절에 지어져 미국 점령 때는 막사로, 일제 점령 때는 감옥으로 쓰였단다. 학원 선생님과 둘이서 한탄하며 하던 말로 차라리 일본이나 미국이 아니라 영국의 점령을 받았더라면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실제로 홍콩이던 호주던 잘 살긴 하잖아?

  믿기는가. 우리의 수원 화성은 이 요새보다 10여년 뒤 완성되었지만 실용성은 물론 완성도와 방어도 면에서는 이 요새따위와 비교가 안된다. 정약용이 수원 화성의 공사를 맡을 때 나이가 겨우 서른. 나와 별로 차이도 나지 않는데 그만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나 하는 챙피함도 든다.

  약간을 더 걸어서 산토니뇨 교회(Basilica Santo Nino)도 들렀다. 산토니뇨는 아기예수라는 뜻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산토니뇨 앞에서 기도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 뒤로는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를 볼 수 있다. 마젤란이 세계일주 중 이곳 세부에 들렀을 때 세운 것이라는데 보이는 것이 오리지날 마젤란의 십자가는 아니란다. 지금의 십자가는 훼손 방지를 위해 세워둔 모형이고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있단다. 어렸을 때 많이 했던 KOEI에서 만든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는 마젤란보다 내가 세계일주를 먼저했는데...


  우리 숙소가 있는 오스메냐 서클(Osmena Circle)까지 통하는 오스메냐 블리바드(boulevard, 대로) 좌우로 늘어선 거리상점들을 둘러보며 올라가보기로 했다.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높은 습도와 기온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충분히 짜증나게 만들었다. 나는 요 몇 일간 심한 배탈 때문에 먹는 것을 조절했는데 시원한 음료가 가득 담긴 수영장에서 맨몸으로 뛰어들어 맘껏 마시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 더운 기후에 사는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내가 겪어보니 알겠더라. 상점 안에서 더위를 식히다가도 밖으로 나서면 다시 상점의 에어컨 환경이 그리워졌다. 더워도 브리즈번처럼 습도가 낮다면 그늘에서는 견딜만도 할텐데 습도가 높아 그늘이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오스메냐 서클에 위치한 네이쳐 스파(Nature Spa)를 찾았다. 어둑어둑한 실내 조명에 근무를 안하는 줄 알았으나 문을 열어보니 정상근무를 하더라. 한국사람이 어지간히 많이 오는지 한글로 된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다. ‘조용히 해 주세요’.

  가게로 들어서면 상큼한 민트 향이 난다. 잔잔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음악도 들린다. 마치 내가 수능볼 때 한창 유명하던 엠씨스퀘어(MC Square)나 서브리미널 효과(Subliminal Effect, 잠재의식 효과)란 제목의 긴장완화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음악들 같은 느낌이다.

  마사지도 시간과 옵션이 다양하다. 원하는 것으로 선택하면 따스하면서도 상큼한 민트 향이 나는 물로 발을 씻겨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나눠주는 옷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면 사람이 들어와 마사지를 해준다. 순서와 횟수가 일정한 것으로 봐서는 마사지에도 시행규칙(?) 같은게 있나보다.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환자를 대하는 물리치료사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안마나 마사지를 싫어한다. 이유는 아프기 때문인데 내 마음가짐이 그릇된 것인지 사람들은 시원하다는데 난 그 시원한 기분을 잘 모르겠다. 사실 오늘 받은 마사지도 그랬다. 뭔가 스트레칭을 해 주는데 고통 때문에 나오는 ‘끙’ 소리를 참는게 일이었다.


  마사지 받고 나오는데 한바탕 운동을 하고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은 눈 앞에 보이는 KFC에서 먹었다. KFC도 나라마다 메뉴가 틀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의 KFC에서는 사이드 메뉴로 그래비(Gravy)가 나오고 필리핀의 KFC에서는 사이드 메뉴로 밥(Long Rice, 풀풀 날리는 밥)이 나온다. 참, 맥도날드도 밥이 나오는 메뉴가 있다.

  그나저나 이 더위 어떻게 안되겠니?


교통비, 식사 등 : 1960페소(5만 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