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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1. 록햄턴(Rockhampton)

[09년 12월 21일, 월] Take Off

by 이거는 2010. 3. 5.

  서울, 맑음

  드디어 오늘 17시 55분 비행기.

  제대한지 2년이 지났지만 24시간 단위로 시간 읽는게 편해 아직도 시계를 24시간 단위로 놓고 쓴다. 출발하기 2주 전부터 컴퓨터와 워킹 홀리데이에 관련한 사항을 하나 둘 정리하고 지난 금요일까지 전화 사용 후 장기 정지를 시켜뒀다. 요 근래 마치 시한부스러운 호주로의 출발 전 나날을 끝내고 정오쯤 일찌감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2시가 조금 넘었고 늦은 점심으로 부모님과 공항 음식점에서 좋아하는 순대국을 먹었다. 한동안 한국음식은 못먹겠지? 입대 직전 마지막 밥도 순대국이었는데...;

  지금 같아서는 마치 여행이라도 가는 것 마냥 기분이 들떠 얼른 출발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아들네미 외국보내는 것에 걱정하시는 부모님께는 좀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오후 3시 20분쯤 되니 항공사 카운터 업무가 시작되었다. 나는 JAL 항공기라 확인해보니 인천공항 3층 출국장 G열에서 카운터를 사용했다. 가방에 나름 정리하여 추려넣는다고 넣긴 했는데 20킬로가 초과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기긴 했지만 무사히 통과되었다. 헬스장에서야 벤치프레스 60킬로쯤 가볍게 들지만 등에 지거나 짐으로 항상 지어지는 20킬로는 그 피로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군장도 처음에 멜 때는 '어? 이 정도면 메고갈만 하네'하다가 정작 몇 시간 지나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리듯, 지난번 일본여행 때도 무식하게 배낭에 13킬로쯤 담고 다니다 여행 내내 그렇게 후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행보단 살고온다는 생각으로 이사하듯 짐을 쌌으니 20킬로 제한이 아쉬울 정도였다. 짐을 맡기고 나니 노트북과 기타 필요문서 및 책자 하나를 담은 8킬로짜리 작은 배낭하나만 남았다. 이것도 들어보니 전혀 부담없는 무게는 아닌 듯 했다.

  공항에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도 지쳐 벤치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는 비행기가 5시 30분부터 탑승을 시작한다기에 5시 15분쯤 부모님과 헤어져 출국장에 들어갔다. 노트북을 꺼내달래서 확인시켜주고 엑스레이에 점퍼를 비롯한 짐을 통과시키는데 검사중 웬걸. 가방 안에 소지불가 품목이 있다고 해서 짐 검사를 당했다. 분명히 빠짐없이 확인했는데?

  알고보니 필통 안의 NT 커터. 건축공학 전공자에게 NT 커터는 생명인데 짐을 통째로 우편으로 붙이거나 아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와야된단다. 공항엔 이제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

  출국장에서 재출입 도장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마침 아까 카운터 대기중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금지품목 수거함이 생각나 그곳에 얼른 넣어두고 다시 확인을 받았다. 한번 그러고 나니 검사가 좀더 철저해졌다. 따로 준비된 곳으로 불려가 검사를 받고 면세점따위 둘러볼 여유없이 담배 하나만 달랑 사갖고 5시 45분쯤 외부 출국장으로 연결되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보안요원 하나가 누군가를 찾는데 발음상 나인 것 같아 내노라 하니 내가 마지막 승객이란다.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 암튼, 나홀로집에 공항장면 인천 로케이션으로 리메이크해서 눈썹이 휘날려라 달렸다. 손에 쥐어진 녹색 여권으로 나라망신도 시켰다. 아~! 아까 전 5시로 리셋하고 싶다.
  탑승 후 20분쯤이 지나니 기내식이 나왔다. 그 전에 워낙에 많이 먹어둔 탓에 먹기 싫었지만 광고에는 일본 명인이 손맛을 낸 도시락이며 JAL의 명물이라기에 먹기로 했다. 오오 JAL이 미쳤나 도시락을 나무판으로 만들었어!! 뭐 싸구려 플라스틱이거나 파티클 보드쯤 되겠지? 설마 하면서 열어봤더니 웬걸. 폼보드도 아닌 얇은 우드락이었다. 그것도 단면무늬. 그럼 그렇지. 연근밥, 절인 돼지고기, 게밥 등등 보기엔 좋지만 맛은 별로인, 기술과 꾸밈은 있지만 사랑은 전혀없는 엣지없는 도시락이었다. 아까의 짐 검색으로 당황해 올렸던 혈압과 갑자기 달리고 난 후의 후유증인가... 머리가 슬슬 아픈 듯 해서 맥주 대신 '오렌지 주스 잇빠이 구닷사이'로 주스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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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리타에 내려 가득찬 배를 해결하기 위해 해우소에서 영역표시를 한 후 환승절차를 밟았다. 공항에 한글로 잘 설명되어 있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탈 비행기는 8시 55분 비행기였으나 조금 연기되어 9시 15분 비행기로 바뀌어 있었다. 시간이 되어 탑승하니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다리 뻗고 자면 편하겠다 생각했지만 난 교양인에 소속과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그런 행위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얌전히 내 자리에만 앉았다.

  일본어 입국신고서를 나눠줬기에 영문으로 바꾸어 작성하고 일찌감치 잠이나 자야지 했건만, 와인잔 들고 마셔보겠냐는 스튜어디스의 말과 미소에 녹아 향긋한 백포도주를 조금 마셨더니 머리가 본격적으로 아파왔다. 결국 못참고 아스피린을 달라고 해서 먹고 돌부처마냥 앉아있었다. 잠은 자야겠는데 머리는 무지 아프고 이제는 속도 쓰려왔다.

  그렇게 있는데 탑승 후 2시간 뒤인 11시가 넘은 시간에 다시 기내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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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국제선이라서 그런지 아까보다 좀더 나아보이지만 전혀 먹고싶지 않아. 게다가 사진이나 남기려 열어보는 순간 아까 먹은 기내식, 그 전부터 부르던 배, 머리아픔, 기체의 흔들림, 기타 등등이 한데 섞여서 멀미까지 났다. 분명 구름 위 기상현상 없다던 높이일텐데 기체는 왜 흔들리는 거지? 아무튼 근래들어 최대의 위기. 노라조의 슈퍼맨 한 대목이 떠오른다. '아부지~ 빈 속이 날기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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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시간의 여행을 위해 손잡이 부분에 간단한 게임을 위한 조이패드가 있더라 -

  급기야 위로 아래로 다 불편한 상황. 결국 못참고 12시쯤 기내 화장실에서 소화안된 부분을 다 게워냈다. 차라리 편하네. 1시쯤 되니 기내등을 꺼줘서 잠잘 환경을 만들어주더라. 기내용 모포를 나눠받고 살짝 잠이들었...지만 오전 3시 반쯤 되니 햇살에 눈이부셔 잠이 깼다. 정말로!!! 우와, 3시 반인데 해가 뜨고 있었다!

  햇살에 비친 구름의 모습은 내 몸상태를 잊을만큼 정말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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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가 조금 넘으니 다시 망할 기내식..이 나왔다. 안쉬고 먹냐? 간단히 빵으로 나왔는데..

  아.. 야메떼.. 가 아니라 야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