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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1. 록햄턴(Rockhampton)

[09년 12월 22일, 화] 남반구 도착!

by 이거는 2010. 3. 5.

  브리즈번, 맑음, 비

  장장 13시간을 날아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알고 왔던 아침 7시 10분 도착은 한국 시간이 아닌 현지 시간이었다. 짐가방(바퀴 5개 짜리 이민가방) 손잡이 부분에는 'Be the Reds'(내년에는 여기서 월드컵을 보게 될테니) 손수건을 묶어놓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방 끌개 손잡이는 출발 전부터 말썽이더니 어디론가 빠져 이미 없었다.


  공항 내에서 각 층을 플로어(floor)가 아닌 레벨(level)이라 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출국장은 3층, 시내로 가는 기차는 4층에 있어 4층으로 올라가 공항을 나섰다. 내 눈에 보인, 그리고 느낀 느낌은 한국과 같은 여름의 냄새가 났다. 다른 뭐라고 정의내리지 못할 여름의 냄새. 한국의 여름 같았다. 호주라고 별로 뭐 특별해 보이는 것도 없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열차를 타려고 보니 가격이 14.5불. 우와~! 무진장 비싸네. 첫날부터 이렇게 돈쓰면 힘든데.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기분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하기에 너무나 그리워하던 여름냄새를 맡으니 기운이 솟았다. 아직 숙소도 정하지 않았지만 마냥 여행온 기분에 들떠있었다. 브리즈번 시티내 혹은 주변 백팩커에서 하루를 머물며 이곳의 분위기를 느껴볼 생각이었다.


  기다리던 열차가 도착했고 문앞에 섰는데 열리지 않아 확인해 보니 이곳은 문 옆의 버튼을 일일이 눌러야 열리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다. 거 귀찮은 시스템이네.

  브리즈번 센트럴 역에서 내려 눈앞에 처음 보이는 백팩커에 들어갔다. 팰리스 백팩커. 겉모양은 그럴 듯 했지만 내부 시설은 열악했다. 아~~ 내가 있던 부대 막사도 일부 삐걱거리긴 했어도 최소한 이것보단 좋았다. 그런데도 값은 하루 31불. 남은 것은 4인실 뿐이라 거기서 머무르란다. 게다가 보증금으로 20불을 더 가져갔다. 도저히 안되겠다. 숙소부터 알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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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 짐을 정리하는데 어디서 빈 디젤 덩치의 외국인 하나가 들어왔다. 간단히 헬로우 하와유 정도로 인사를 마쳤는데 이 녀석은 오자마자 자야겠다고 드러누웠다.

  오늘 할 일은 핸드폰 개통, 은행구좌 열기, TFN(텍스파일넘버, 호주에서 일하려면 필요하다) 신청,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동안 머물 숙소찾기... 요 정도인가?

  큰 짐 하나를 덜어 간편한 복장으로 등에는 노트북 하나만 메고 도시구경을 나섰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오옷 여기도 세븐일레븐이 있구나! 신기해하며 한국에서는 편의점에서 천원정도 할 2달러짜리 생수를 사면서 프리페이드 폰 있냐고 물어봤다. 물론 어디까지나 표현하고자 하는 내 의도가 그러했다는 것이지 그렇게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라고는 장담못한다. 독특한 억양으로 40불짜리 삼성 핸드폰이 39불이란다. 오오 반가운 상표인데? 역시 글로벌 샘승.

  그래 내가 찾던게 이런거야. 게다가 신규 등록하면 30일간 400불 통화가 공짜란다. 유학원에서 사면 당연히 줘야할 심카드와 개통해주는 것에 대한 생색으로 7만원 가량을 내는데 여기에 30불 충전카드까지 사면 도합 10만원. 물론 그렇게 구매해도 400불 통화따위는 없다. 왠지 리차지 카드도 여기서 사야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안사뒀다.


  워홀러들이 많이 쓰는 은행이 ANZ라기에 나도 거기에 개설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돌며 은행을 찾는데 다른 은행은 많이 보이는데 ANZ는 안보였다.

  우선은 핸드폰을 개통해야 개인정보를 적을 때 유리할 것 같아 미리 적어온 호주로 가는 길 브리즈번 지사를 찾았다. 인터넷 정도야 가능하다 했으니 구글 맵으로(정말 편하고 신기하다) 위치나 알아봐야지.

  프리페이드 개통을 위해 인터넷을 했는데 집에서 쓰던 광랜에 비교해서는 아~~ 우리 인터넷이 근 10년새 엄청난 발전을 했구나 싶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번호를 얻고싶어 뒤로가기와 제출을 번갈아 했더니 나름 끝자리가 1010으로 끝나는 번호가 나왔다. 앞 자리는 별로였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듯 해서 그냥 승인했다. 30불짜리 리차지(선불요금 충전) 카드도 25불에 팔기에 하나 샀다. 역시! 현지에서 사는게 더 싸군.

  파랑새의 꿈이라는 다음카페에서 숙소 정보를 구했더니 시티 주변에 주당 105불, 120불 하는 숙소로 4군데가 보여서 수첩에 번호를 적었다. 숙소를 구하면서 존(Zone)이라는 개념을 알게되었는데 시티 중앙은 1존, 시티에서 조금 멀면 2존, 3존, 이렇게 늘어가는 것이다. 인터넷 하는 길에 TFN 넘버도 받으려 했는데 자꾸 접속이 끊겨 포기했다.

  유학원을 나서는데 10시 반, 슬슬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했다. 호주사람들, 특히 여자는 모델 뺨치는 몸매가 있는가 하면 드래곤볼 마인부우 코스프레해도 되겠다 싶은 사람도 있었다. 옷차림은 확실히 과감. 우와~

  구글 맵에서 본대로 ANZ 은행에 들러 통장 개설을 했다. 분위기 파악을 위해 안에 들어가 잠시 보니 한국처럼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길래 나도 번호표를 뽑아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뱅커한테 가니 하이! 하와유 간단한 인사를 하기에 방긋 웃어줬다. 통장을 개설하고 싶다고 하니 따로 입구쪽에서 상담원과 상담하라기에 갔다. 내 또래 동양여자였는데 내가 영어 초보인지 뻔히 보일텐데도 엄청난 스피드와 혀를 엄청 꼬아댔다. 쫄지않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가입신청서에 펜을 들고 하나하나 설명해줬다.(항차 네가 무엇이기에 흐흐흐..) 설명하면서 학생아니면 다달이 유지금이 나간단다. 그래서 난 학생이고 다음 주에 학원등록을 한다고 거짓말(지금 이 순간을 위해 2주 전부터 인터넷을 검색하며 시나리오를 준비했지!)을 했다. 그랬더니 쿨하게 그럼 그때가서 확인을 받으란다. 지금 당장에 증명할 길이 없으니 그냥 내비뒀다.(아.. 실패!) 500불을 우선 입금해야 한다기에 입금하고 밖으로 나왔다. 뭔놈의 보증금 종류가 이렇게 많은거야? 아까 숙소도 그렇고..

  돌아다니다 보니 인포메이션 센터(인포메이션 센터는 차라리 일본이 나았다)가 있더라. 시쳇말로 정말 허접한 브리즈번 지도가 구비되 있기에 지도를 참고삼아 백팩커스 주변을 익히기 위해 돌아다녔다. 가장 중요한 것이 숙소건 어디건 간에 이곳의 지명과 위치를 하나도 모르니 문제가 생기더란 사실.

  1시쯤이 되니 노트북의 무게도 슬슬 부담되었다. 게다가 어제 속이 뒤집힌데다 잠도 별로 못자서인지 피로가 확 몰려왔다. 하지만 숙소 문제를 오늘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 또 비싼 백팩커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되어 숙소 위치와 환경이 어떠한지 보기위해 하나 둘 연락을 해봤다. 우선 캥커루 포인트는 지도상으로 보니 브리즈번 강 건너에 있어 걸어다니기는 쉽지 않을 듯 했다.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과 만만찮은 이곳 교통비를 고려해서 제외했다. 두 번째는 120불 짜리로 시티에서 가까운 보웬힐과 시티 중앙에 위치한 숙소는 시설은 정말 좋았지만 쉐어생들이 다들 한국인들 뿐이라 제외했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외부인 윈저에 위치한 숙소는 주변에 상점이나 상가가 전혀 없긴 했지만 외국인이 두 명이나 쉐어로 있어 여기로 정했다. 전화해서 센트럴 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인은 한국사람이었는데 32살이라고 했다. 호주가 처음인 나를 위해 시티주변을 간단히 설명해줬고 지하에 위치한 한인마트를 소개해줬다. 한인마트 앞에 위치한 정류장에서 윈저에 위치한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거실에 인도인이 산다고 했는데 좀 어질러진 것을 빼면 숙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2주씩 쉐어비를 내기로 했는데 첫 주는 80불, 다음 주부터는 105불씩 내기로 했다. 근데 여기도 본드라고 보증금으로 2주치 방세를 추가로 걸어둬야 한단다. 문제 일으키고 도망가거나 기물파손 등의 문제가 생길경우 여기서 제할 목적이라고 했다. 호주는 보통 그렇게 보증금을 걸어야 된다는 설명을 받았다. 뭐 그렇다니 어떻게해?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지.

  곧바로 계약을 맺고 숙소 주변의 교통편을 알아야 하니 올 때는 전철을 탔다. 은행거래는 조심해야 할 것이 한국과는 다르게 이체 후 즉시 이체가 되는게 아니라 몇일 후에나 입금이 된다는 것과, 자신은 워홀로 왔지만 호주가 좋아서 학생비자로 공부중이라는 배경설명 등 자신이 처음 워홀로 호주왔을 때 했던 고민같은 문제를 친절히 얘기해 주며 시티까지 같이 왔다. 방향과 지명을 몰라 아직도 공간감각이 익숙하지 않았다. 백팩커로 돌아오니 2시, 샤워 후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내 침대는 2층 침대의 1층이었는데 잠결에 누군가 옆 침대에 와서 눕는게 느껴졌다. 뭐 새로온 백팩커겠거니 싶어 그냥 잤다. 밖에는 더위를 싹 가게 할 비까지 시원스레 내렸다. 비내리는 브리즈번, 시내 한복판에서 샤워후 피곤한 몸으로 빗소리를 들으며 곤히 단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더라..? 전화라고는 올 데가 마땅찮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핸드폰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고보니 집 주인인 Tommy 형이 전화 한 것이었다. 교통권을 데일리로 끊은 것이니 이따 저녁 때 강에서 페리타고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으면 좋을거라고 했다. 마치 예전 자신의 모습처럼 생각해 노파심에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전화했던 것이다.

  잠이 덜깬 상태에서 모자하나와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비내린 후 시내는 시원해져 있었다. 돌아다니기 한결 수월했다. 지도를 보며 페리를 타러 무작정 강가로 갔다. 마침 선착장처럼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같이 기다리다 페리에 탔다. 가만히 있으면 왕복하는 것이라고 토미 형한테 들어서 끝까지 주욱 가볼 생각이었다. 비온 뒤라서인지 페리 타면서 맞는 강바람은 습한데다가 상당히 추웠다. 게다가 같이 웃고 떠들어주는 사람 없는 페리에서 혼자 청승떨고 있으려니 기대만큼 재미가 없어 반바퀴를 돌아 처음 탄 지점에서 내렸다. 아~~ 브리즈번 온지 9시간만에 재미없어졌다.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전혀 새롭지 않아.

  콜스(Coles)라는 큰 마트가 보이길래 오늘 저녁과 내일 중에 간단히 마실 레몬에이드 하나를 샀다. 제일 저렴한 녀석으로. 영양성분을 보니 이곳 호주는 kcal를 쓰는 것이 아니라 kj을 사용했다. 줄이라니.. 고교시절 이후 완전히 생소한 단위잖아. 단위환산을 하면 대략 kcal의 4배쯤 되는 듯 했다.

  백팩커의 내 방 문을 열어보니 여자..? 가 있었다. 잘못들어왔나 싶었는데 그렇진 않았다. 아까 빈 디젤스럽던 외국인은 어디 나갔는지 짐이고 옷이고 돈이고 침대 위에 패대기치고 나가있었다. 게다가 내 뒤로 젖은머리를 수건으로 감싸며 들어오는 사람을 보니 아까 잠결에 머리 긴 외국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도 동양여자였다. 하이~ 하니까 고개 숙이며 하이라 맞받는 편이 한국사람 같았다. 물어보니 역시나.

  한명은 워홀 8개월차로 2일 뒤 한국간다 했고, 한명은 10개월차로 남은 1개월을 놀다 간다고 했다. 우와~ 선배잖아! 몇 가지 일자리 관련한 간단한 정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수첩에 일자리 검색관련 홈페이지 몇 개를 받아적었다. eem 어쩌고 하는 닭공장이 한국사람을 다시 뽑기 시작한다고 했다. 근데 여긴 시티 근처라 세컨드 비자 발급이 안되겠는걸? 나중에 세컨드 비자를 얻고나면 생각해봐야지. 궁금한 것이 많을법도 하지만 뭘 더 물어봐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마치고 가계부와 일기를 적다가 너무 졸려 8시 반쯤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본명은 모른채 빈 디젤이 되어버린 녀석은 술 진득히 퍼먹고 새벽 2시쯤에야 들어와 팬티차림으로 코골며 잠에 들었다.

  - 일 구하려면 이력서 들고 식당같은데 이리저리 들러보나요?
  - 그럼요. 그게 가장 나아요.
  - 일은 어떤 것을 하게되죠? 청소랑 키친핸드?
  - 네. 카운터 볼 수도 있구요.
  - 말이 우선은 안되잖아요 카운터 보려면.
  - 아.. 아직 안되세요?
  - ...;
    우와 이미 겪어간 모습으로 그런말 하니까 부럽다!!(나중에 워홀 새로온 사람한테 써 먹어야지)

 그런데 나 여기온거 잘한 것일까? 첫 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항철도 14.5
백팩커 31+20= 51
휴대폰 39
물 2
프리페이드 카드 25
입금 500
1·2존 데일리 5.8
음료 2
쉐어 80(첫주)+105(둘째주)+210(105*2본드비) = 395

총 지출
1034.3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