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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킹홀리데이/8. 브리즈번(Brisbane)

[11년 3월 1일, 화] 솔직해서 좋은 그들

by 이거는 2012. 6. 18.

  누군가 말하길 일할 땐 여자 많은 부서가 비교적 편한거라고 하더라. 사실 내가 일했던 부서도 여자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부서에서 남자들의 역할이란 역시 짐 나르고 힘쓰는 것들이다.

  다만, 닭공장의 일이 소나 양공장에 비교했을 때 크기가 작으므로 '비교적 쉽다'는 것 뿐이지 객관적으로 쉽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자들도 쉽게 일하는 것 같지만 목과 어깨, 허리가 저리다고 호소하고 손도 부어오른다. 일 중에 닭기름이나 양념으로 유니폼이 젖는 것은 보통이고, 양념이 피부에 닿으면 따갑다. 또한 일을 '설렁설렁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3개월 정도의 숙련기간이 필요한데 그 전에는 기계 속도를 따라가는 것도 급급한데다 실수도 잦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 하며 스스로 속상해하는 날도 많다.

  이런 업무 중의 여유는 경험이 만들어준다. 진짜 쉬워서 여유부린다면 오너(Owner)로서는 일꾼들에게 돈 퍼주는 것 밖에 더 되겠는가.

  공장이라는 환경에서 일을 해보니 농장과는 다르게 팀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대화할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 좋았다. 당연히 영어를 써볼 기회도 많았다.

  한국같은 경우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여기는 단 1분이라도 업무시간을 넘기면 난리가 난다. 우리 같으면 자신의 일이 끝났으면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다리던가 가서 도와주곤 할텐데, 여기서는 시계만 보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하던 것을 그대로 내려놓고 쉬러 나갔다. 사정이 있어 쉬는 시간에 업무를 하게되면 나중에 그 시간만큼 쉬다가 들어간다. 남들 눈치를 안보고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의식이 어떤 면에서는 부러웠다.

  남을 크게 의식 안하기로는 차량이나 복장에 있어서도 달랐는데 우선,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오래된 연식의 차량을 몰고 다닌다는 점이었다. 중고차 시장에는 여전히 90년대 차량의 비율이 높았고 외관과 연식에 전혀 부끄럼 없이 몰고 다니는데 어찌보면 당연해야할 이런 점이 신기하게 느껴진다니. 간혹 도요타(Toyota) 트럭중에 100만 킬로가 넘는 것들도 있다고 하더라.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한 뒤 다시 달까지 6할을 간 거리라니.

  맨발이나 상의를 탈의하고 시내 한복판을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신기했고 공원이나 바닷가에서는 토플리스(Topless) 차림으로 일광을 즐기는 여성들을 심심찮게 보기도 했다.

  대화에 있어서도 그들은 솔직했다. 특히나 성(姓) 적인 면에서. 물론 젊은 사람들은 비교적 쬐~끔 부끄러워 하긴 했지만 야한 농담을 주고받았고 아줌마들은 아~주 그냥 대놓고 야한 농담을 했다.

  주말이나 휴가 때 뭐 할거냐고 물어보면 늦잠자고 하루종일 섹스를 하겠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데 그 당당함에 오히려 듣는 내가 놀랐다. 우리 부서의 젊은 여자들이 가끔 업무 중 하품을 하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어제 남자친구하고 많이해서 그러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은 보통 쑥쓰러워 대답을 못했다. 모르는 척 그게 뭐냐고 하면 '붐붐'이라며 이해를 위해 제스쳐까지 취해준다. 난 그러면 그게 뭐야 무서워라며 20살 전후의 여자 동료들한테 넌 뭔지 알겠어? 라고 되물어 보면 일부는 이상한거 가르치지 말라며 말리고, 일부는 생색내며 친절히 설명까지 해준다.(우리 부서에서 일하는 최연소 호주인은 만 18세 = 19~20살 이다.)

  덩달아 짖궂은 장난도 많이 치는데 우리 부서에서 다루는 부위중에 텐더로인(Tender loin)이라고 남자 성기가 자연스레 상상되는 부위가 있다. 자기네들끼리 빨리 말할 땐 기계 소음에 묻어서 잘 알아듣진 못하지만, 손으로 하는 묘사나 웃음 소리로 미루어봐서 음담패설이 분명했다. 간혹 큰 텐더가 나오면 싱글인 여자들한테 얼려서 남자친구 대신 쓰라고 주기도 했는데 업무 중이나 심각한 환경에서도 이렇게 자연스레 농담을 나누는 그들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얘들은 일만 죽어라고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은 적당히만 잘하면(못하지만 않으면) 된다. 농담 잘하고 위트있는 사람들이 인기가 많은데 말 한마디 못하는 동료보다는 서로 잘 어울리고 장난도 같이 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이 용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하면서 짐캐리로 빙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인기 짱!

  보통의 서구권 여성들은 동양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데 이건 덩치의 문제를 떠나, 다만 그들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농담은 커녕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영어 실력과 공감대의 문화가 없는데 어찌보면 당연했다. 차라리 동양권 국가의 영어 못하는 사람들끼리는 친해지기도 쉽고 대화도 큰 문제가 없다. 분명 어딘가 부족한 영어로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정작 영어권인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저번에 거시기가 거시기라니까.

  난 남자끼리 윙크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여기서는 통용되는 듯 했다. 윙크로 인사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여성들은 대화를 할 때 여성적이고 귀여운 언어로 서로간에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 sweetie, honey, darling, handsome, pretty 등의 말로 호명을 대신하기도 했다. 한국말로 굳이 따지자면 어머, 얘... 정도가 되겠지?

  난 그것도 모르고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호주애가 굿모닝 달링이라는데 굿모닝 베이비(baby)라고 대답했다. 미드 프렌즈(Friends)의 조이(Joey)처럼 How ya doin까지 섞어서. 난 단번에 문제가 커진 것을 상대방의 크게떠진 눈을 보고 알았다. 위 나열된 단어 중, 그것도 남자가 여자한테 baby라고 부르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는 것을. OMG! 오마갓!

  이후로 걔는 내가 고백한 줄 알고 좋다고 장난까지 치면서 여러모로 챙겨줬다. 고맙긴 했지만 난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젊어서 그런지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우리네들처럼 쓰는 약자와 이모티콘을 많이 썼는데 이해하는데 애먹었다. xoxo도 hug와 kiss라는 것을 그 때 처음알았다.

  매일 아침마다 아줌마들은 밤에 힘썼냐고 묻기도 하고 결혼하면 영주권 나와서 한국 안가도 된다고 애부터 낳고 보라고 장난삼아 부추키고는 했는데 난 그녀의 당당함인지 당돌함인지에 겁이 났고 동양적인 면에서는 간혹 예의를 벗어난 모습이 싫기도 했다. 때로는 그냥 장난으로 받기에는 오해할만한 행동도 많았는데 예전에 TV에서 박찬호가 미국 생활 초기에 그들의 문화면서 당연스런 장난에 크게 화를 냈다고 했던 적응기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뼛속까지 한국인인가봐. 하지만 그들의 솔직함에 마음이 열리고 금새 친해지는 점은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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